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4월 6일 개막했습니다. 오는 7월 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입니다. 전 세계 각국에서 79명의 작가가 참여한 2023광주비엔날레 본 전시회는 대주제를 탐구하는 4가지 소주제 별로 전시장을 꾸몄습니다. KBC는 김옥조 선임기자의 이번 전시회 취재 관람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 소주제 ‘조상의 목소리’(제3전시장)
2층 제2전시실을 나오면 오른편 중정 창문을 통해 외광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실내 조명 하에 있었던 관람객들은 일순간 환한 바깥세상을 영접하며 해방감을 느낍니다.
돌아보면 이번 전시회의 동선은 넓었다가 좁아지고 다시 확 트이는 공간 구성의 반복으로 진행됨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시실 내로 들어가면 어두웠다가 이동통로로 나오면 밝아지기를 반복합니다. 이것은 전시회에 집중했다가 넓고 밝은 곳으로 나오며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를 줍니다. 이것도 알든 모르든 전시를 관통하는 재미입니다.
3층으로 오르는 통로에도 어김없이 작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머리 꼭대기 위로 마대자루 같은 재료를 엮어 놓은 듯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올려 쳐다봐야 합니다.
말레이시아 작가 이이란의 작품 ‘생선 절임용 흰 매트’(2023)입니다. 이 매트는 해양 쓰레기를 직조한 것입니다.
제3전시장의 소주제 ‘조상의 목소리’는 전통에 주목하고 이를 재해석하여 근대주의적 개념에 의문을 던지고 도전하는 접근 방식을 탈국가적으로 조명한다는 것이 전시기획자가 밝힌 의도입니다. 안내서의 설명이 길고 어렵습니다.
통로 중간 지점에는 화면을 설치하고 말레이시아 사바주민의 고된 노동요인 듯한 노래가 들립니다.
3층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만나는 이이란의 작품은 천정에서 길게 늘어뜨린 매트로 공간을 장악하려 합니다. 하지만 버려진 공간의 버려진 작품처럼 관람객을 그냥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제3전시실 입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압둘라 코나테의 작품 ‘붉은 물방울’(2018)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선 검붉은 색감의 이미지가 시선을 압도합니다. 입체적 평면 벽걸이 형식의 작품으로 서아프리카 망데민족의 수렵복을 참조하였다고 합니다.
망데족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옷에 붙인 ‘그리그리’란 부적을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기하학적 문양과 정형화된 화면 구성은 아프리카 미술문화를 엿보게 합니다.
언뜻 보기엔 붉은 색은 ‘피’를 연상하게 하고 검은 색은 아프리카 대륙의 거친 환경에서 신과 세상의 시련을 이겨낸 자의 세계를 상상하게 합니다.
안쪽으로 이동하면 옛 시골 극장의 느낌이 확 드는 공간이 나옵니다. 카자흐스탄의 작가 바킷 부비카노바의 공간 설치 작품으로 툴루즈-로트렉의 물랑루즈 카바레를 연상하게 합니다.
안으로 입장한 관람객은 온통 붉은 커튼으로 둘러 쳐진 기역자(ㄱ)형 방의 세 개의 원형 탁자에 앉아 쉴 수 있습니다. 막상 의자에 앉아 보면 고급 중식당에 초대받은 느낌을 받습니다.
작품의 한 부분인 공간에 관람객이 직접 들어오고 작품 세트인 의자에 앉도록 한 것은 관객이 작품 구성의 한 요소로 참여함으로써 행위와 체험을 통해 소통하는 예술을 시도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며 피부로 느껴지지 않은 어떤 정신을 표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의 작품처럼 제3전시장은 관람객이 작품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관람객의 참여형’ 작품이나 공간들이 눈에 많이 잡힙니다. 크게 3개의 공간으로 구획하고 두 번째 공간에 평면과 영상, 입체적 작품들을 절묘하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일부 작품은 공중에 부양하여 놓아 마주보는 작품 감상을 넘어서 작품 사이로 들어가 관람하도록 해 관람객의 참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비엔날레 전시가 대개 작품 앞에 안전펜스나 선을 그어 발길이 넘지 않도록 해, 다소 불편함을 피할 수 없었던 기억이었던 것과는 달라진 방식입니다.
음악을 미술의 요소로 해석한 작품도 흥미를 끕니다. 타렉 아투이는 2019년 광주를 방문해 현지의 악기장, 예술가, 공예가들에게 한국의 전통 타악기, 옹기, 청자, 한지 제작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선보인 ‘엘레멘탈 세트’(2019~2023)는 한국적 전통악기와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 작업을 시도합니다.
바닥에 북과 장구, 징, 꽹과리 등 악기를 놓고 매달린 북채가 움직이는 일종의 키네틱 아트 성격의 작품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작업하는 과정에 들어가 행위를 함으로써 작품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완벽한 ‘관람객 참여형 작품’인 것입니다. 한국작가 이건용의 ‘바디스케이프76-3’입니다.
관람객 참여자는 색연필을 손에 쥐고 손을 몸 바깥방향으로 올렸다가 곡선을 그리며 떨어뜨립니다. 다시 반대쪽 손을 이용하여 시작점에서 같은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자신만의 바디스케이프 드로잉을 남기는 것입니다.
김구림의 작품도 관람객과 함께 합니다. 여성 모델들의 신체에 장식적 문양을 넣고 구슬과 레이스를 붙였던 ‘바디 페인팅’(1969)을 이번 전시회에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로 재구성했습니다.
관람객의 손등과 발, 팔 등 신체 일부에 원하는 그림을 그리게 해 흥미와 재미를 유발시킵니다. 전시장을 돌아보는 동안 뻣뻣해진 다리를 펼 겸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시간도 제공합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림을 작가 혼자서 하는 개인 창작물이 아니라 관람객과 함께 만들어 간다는 개념을 인식시킵니다. 미술이 대중과 호흡할 때 생명을 갖는 것이란 의미로 생각됩니다. 제도와 관습, 틀에 갇힌 고정관념을 벗어나고자하는 예술가의 진보적 성향을 엿보게 됩니다.
관람객 참여형 이벤트가 진행 중인 제3전시장 끝은 글라스월로 통유리를 통해 화창한 봄날의 바깥 풍경을 보너스로 볼 수 있습니다. 중외공원 솔숲의 바람과 향기를 느끼는 듯 쉬어감을 선사합니다.
이곳에선 현대미술 작품 재료의 일상화, 또는 한계의 초월을 경험합니다. 이것도 미술작품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전시도 종종 보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에드가 칼렐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입니다.
여기에는 아침 식탁에서 먹었던 바나나와 고구마, 오렌지, 그리고 수박, 감자, 사과, 마늘쫑, 파인애플 등 눈에 익은 채소와 과일들이 돌덩이 위에 놓여 있습니다.
작품이란 작가의 정신적 산물이라고 합니다. 동시대인의 감정과 정서를 담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전통적 미술 개념을 깨뜨린 것 같습니다. ‘조상께 감사 드린다’는 메지시를 전달하는 과정과 결과만을 주목할 뿐 전시 이후의 보존과 기록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니까요.
현대미술은 알면 알수록 쉽고 단순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기사는 4편에서 계속됩니다.
두 번째 소주제 ‘조상의 목소리’…전통 재해석
“관람객이 작품에 참여해 체험하고 즐긴다”
작품 구성 요소로서 참여·소통하는 예술 시도
이건용·김구림 등 직접 만지고 표현토록 유도
일상 속 재료 사용 전통적 미술의 개념 탈피
“관람객이 작품에 참여해 체험하고 즐긴다”
작품 구성 요소로서 참여·소통하는 예술 시도
이건용·김구림 등 직접 만지고 표현토록 유도
일상 속 재료 사용 전통적 미술의 개념 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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